METROM의 자료실




ETERNALLY<외전>







신력 142년, 미드칠더 중앙 병원

똑똑-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연락한 지가 언젠데 이제서야 오다니. 야박한 친구다.

"들어오그라."

얼굴을 보는 건 2년 만으로 마지막으로 봤던 건 장기항해를 떠나기 하루 전이었던 것 같다.

고생이 많았던 걸까? 어째 얼굴이 더 늙어 있어, 금빛으로 찰랑거렸던 머리카락은 희게 변해 본래 색을 찾을 수 없었다.

"오랜만이데이. 페이트."

"오랜만이야. 하야테."

"소식 전한 지는 조금 됐는디...항해가 오래 걸린 기가?"

"이번에 갔다 온 신차원은 통신이 영 불량해서 말이야. 이틀 전에야 소식 받았어."

"여전히 바쁘구마. 미드칠더의 영웅께서는."

40년 전, 미드칠더에서 로스트로기아로 인해 발생한 소규모 다중 차원 단층을 막으면서 붙은 칭호. 혼자 이룬 업적이 아니라지만 언론과 시민들은 페이트를 영웅화하기 바빴다.

"그 칭호는 부끄러우니 그만해. 걸어다니는 로스트로기아 씨."

60년은 더 된 별명을 이렇게 부르다니.

"내는 이미 퇴역 했잖나. 그리고 더 이상 마법은 쓰지 몬한다."

"그 말에 페이트의 얼굴표정이 어두워졌다.

퇴역 권고를 받은 것은 벌써 1년 전으로 이유는 마법 사용으로 인한 육체 부담과 과도한 업무로 인한 건가의 악화, 사실상 시한부 판정이었다.

마법이 아무리 친환경적 에너지라 한들 그것의 본질이 에너지임은 변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막노동을 하면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듯 아무리 무사고라곤 해도 70년이 넘도록 마법을 써왔으니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시공관리국 내 마도사들이 퇴역 권고를 받는 이유 중 80%는 이에 해당한다.

"...몸은 괜찮아?"

"기래...라고 대답하고 싶지만...그다지 좋지는 않데이. 그란데 니는 아직 정정하구마."

눈 앞에 있는 영웅은 여느 만화에서나 나오는 몸이 강철로 된 괴물인지...그 많은 고난이도 임무를 도맡아 했으면서 아직 20대 그대로 팔팔하다. 이번에 항해했던 곳은 위험 등급 SS랭크의 무인세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상처라곤 조금도 안보이니...나이를 먹긴 먹는 걸까?

"나도...곧 퇴역 할 거야. 슬슬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구세대의 늙은이는 이제 그만 물러나 줘야지."

"마...세대교체 할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제. 관리국도 지금 각각 새 인재들이 이끌고 있고..."

"내 손녀들이지."

에헴 하며 자랑이라도 하 듯 페이트가 말했다. 그 손녀가 누구 딸인데 내 앞에서 자랑하는 건지. 약간 발끈해 버려 노려보듯 말했다.

"내 딸이다."

"그래...네 딸이지. 그리고 내 딸은 누구씨가 도둑질 해갔고."

"으음...50년이나 지난 일로 자꾸 그럴기가?"

"50년이 아니라 오백만 년이 지나도 못 잊어."

도둑놈.

저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벌써 수백번은 느낀 시선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저 날카로운 시선은 조금도 마모되지 않았다.






벌써 50년 전이었다. 나와 비비오가 결혼한 게.

아무리 미드칠더가 결혼에 자유롭고 13살 차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지만 친구 딸은 도의적인 문제가 있었다. 하물며 비비오를 처음 만난 건 19살 때, 즉 비비오가 6살 때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관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4년간 연애를 했고 페이트에게 결혼을 허락받았고 두 딸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그라도 허락 해줬잖나. 물론 죽을 뻔 했지만..."

그런 분노를 내게 보이는 페이트는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차후 듣기로는 정말 베려고 했다고...

"베어버렸다가는 비비오가 슬퍼할 테니까 말이야."

웃으면서 하는 말에 아직도 죽이고 싶다는 한기가 담긴 것 같은 건 착각일까?






타카마치 하야테.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래 걸렸었다. 페이트가 타카마치 페이트가 되었을 때보다 더 오래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페이트는 언젠가 타카마치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만 내가 타카마치 일가가 되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므로.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그 때를 기억한다. 당시 나는 항해를 자주 나갔었고, 집무관이었던 비비오는 나와 자주 항해를 같이 나갔었다. 분명 상하관계였지만 오래알고 지낸 사이라 사적인 시간에는 친구 딸로 대했다. 사적인 대화가 많아 몇 년간 린을 제외하면 가장 친한 국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비오가 그렇게나 날 따라다닌 이유가 사심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자주 찾아오는 비비오에게 적당한 농담이나 던져주며 쉬고 있을 때, 말 실수였다곤 하나 비비오는 확실히 내게 좋아한다고 했었다. 재차 물어보자 비비오는 거의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 마음을 고백했다.

"사랑...해. 사랑해요...하야테 씨...나 안 들키려고 했는데...나 진짜..."

그 때의 나는...약간...아니, 정말 미쳐있었을 때로...제정신이었다면 받아주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적당히, 이유를 대서 거절하고 다음 항해에는 비비오를 데리고 가지 않았을 터였다.

"기럼...내랑 사귀어 보지 않긋나?"

"...네?"

"내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를 봐주지 않을 끼고, 내 역시 그 사람에게 고백하는 일 따윈 없을 끼다."

"그게...무슨..."

"기러니까...내랑 사귀제이..."

그런 정신 나간 내기 따위는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몇 년 후, 나는 내기에서 패배했다. 비비오와 결혼해 두 자식을 뒀고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딱 9년 동안만.








"먼저 가서...미안...자책...하지 말고...너무 일찍 오지 말고...나..없다고..과로...하지 말고...페이트 마마랑...화해...하고..."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며 비비오가 내게 말했다. 야천의 서의 힘마저 빌려 펼친 회복마법은 끊어져 가는 생명을 조금 연장할 뿐 살릴 수는 없었다.

그 마지막 말은 계속해서 나를 걱정해, 점점 작아져가는 목소리로 웃으며 겨우 말을 끝마쳤다.

"하고 싶은 말은...너무...많은데...그만 끊어야 겠네...비야랑 테오...잘 부탁해...사랑해. 하야테."

그 날은 전쟁이 일어났던 관리세계에서 종전 10주년을 기념한 종전기념식이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입장으로서 안 갈 수 없어 두 딸을 놔두고 비비오와 함께 종전기념식에 참여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테러가 일어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나 지났었고, 9년간 테러가 일어난 적 없다해 방심한 탓이었다. 폭죽과 함께 마력 역장이 깔리고 총알이 빗발쳤다. 순식간에 즐거웠던 종전기념식은 피가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총알이 가장 먼저 노린 건 나였다. 당시 관리국의 지원군 사령관이었던 나는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고, 표적이 되기 쉬웠다. 마력 역장이 깔리자마자 비비오는 나를 감싸 안고 총알을 맞았다.

강력한 마력 역장에 실드도, 배리어도 사용하지 못한 채 총알을 받아낸 결과는 처참했다.

그 일을 계기로 페이트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었다.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건 그 일이 있은 이 후 15년이 지나 비야의 결혼식에서 페이트를 만났을 때 였다.







아직 페이트는 내게 원망이 남아있을 것이다. 비비오를 그렇게 뺏어가 놓고 지키지도 못한 내게. 나와 페이트가 이렇게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건 그저 페이트의 감정을 시간이 희석시켰기 때문일 터였다.

"용서가 필요하다면 용서할게. 그러니 그만 죄책감을 지워. 이만 친구로 돌아가자."

텅 빈 듯한 눈동자로, 페이트는 그렇게 말했었다.

용서를 구하지 않고 받은 용서는 너무나도 괴로워서...비록 지우라곤 했지만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 페이트에게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페이트...내말이다.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데이."

"응. 말해봐."

그래서, 오랫동안 전하지 못한 말을 이제서야 전하려 한다. 전하기엔 아직 두려운 말들, 어쩌면 날 경멸할 지도 모르는 말들을.

"내가 비비오랑 사귄 이유는...니를 좋아했기 때문이데이."

시한 부 선고를 받고서야 네게 이것을 전할 용기가 생겨버린 날 용서하지 않을 테지.

"...에?"

"니가 나노하랑 헤어졌다고 괴로워 할 때 깨달았데이. 마...고백도하기 전에 실연 당해버린기지...그러다 비비오헌티 고백 받은 기라."

"내랑 내기 하지 않긋나? 내는 니 헌티서 그 사람을 볼 끼다. 그러다 내가 니를 하랑하게 된다믄 니 승리다. 그 땐 내 니 헌티 청혼하하긋다. 그러나 니가 먼저 지쳐서 떨어져 나가든, 내를 좋아하지 않게 되든 내랑 헤어지자 카믄, 니 패배다."

비비오에게 했던 제안.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 아닌 내기였다.

"그럼...하야테 씨가 이기면 제게 뭘 바라죠?"

"내 승리...? 누군가 죽어 무승부라면 모를까...기런 결말은 읎다."

나는 그 때 아마 둘 다 패배하는 쪽을 바랐었다. 애초에 내게 승리라는 결말은 없었으므로. 뭐, 어찌되었든 비비오는 수락했고, 그렇게 4년이 지나 내가 청혼했으니 결과는 비비오의 승리였다.

처음에 바란 결말은 아니었지만 내기는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비비오헌티서 니를 볼라 켔다. 금발과 적안, 그것만으로 비비오 헌티서 니를 찾았데이. 그렇게 몇 년이 지나서 언제부턴가 내가 비비오 그 자체를 보고 있다는 기를 깨달은 기다."

닮은 점이라고는 같은 계열의 색인 머리카락와 한 쪽뿐인 적안, 큰 키.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헤어지든 비비오를 사랑하게 되든, 내가 끝까지 비비오에게서 페이트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건 비비오도 모르는 사실이데이."

처음에는 비비오에게서 페이트를 봤다. 그러나 페이트를 만나고 페이트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페이트를 보면서 비비오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정의 내린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더 보고 싶었다.

내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이 된 것이다.

"당황했나? 아니믄...경멸했나?"

"아니...다행이라고 생각해."

"...?"

아무리 생각해도 비난 받아야 할 일이었다. 혹여 내가 잘못들은 걸까?

"지금이라도 말해서 다행이라고...사실...알고 있었덕든. 비비오도 그렇고."

"뭐...?"

""내 연적이 마마라니, 너무하잖아요." 비비오가 했던 말이야. 술 마시고 한 말이라 내가 아는 것도 모를 걸."

비비오에게는 단 한 번도 알려준 적 없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게 상담조차 해본 적 없어, 기사들도, 린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걸까?

"한 번도...입박에 낸 적 없었는디..."

"비비오, 나름 눈치 빠르잖아. 아니면 실수라도 했거나."

"뭔가 맥빠지는 구마..."

50년이나 숨겨왔던 비밀을 사실 당사자들은 다 알고 있었을 줄이야...

"언제 말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말하네. 아깐 좀 당황했는데 그래도...알고 있었으니까."

페이트가 다시 한 번 웃었다.

"나도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게 내가 널 싫어한 이유야. 지켜내지 못했다던가, 혼자 살아남았다던가 그런 식상한 원망은...없었다고는 못하겠네. 그래도 그런 건 진작에 없애버렸다고. 애초에 네 잘못도 아니었고..."

"음...더 충격이데이...내를...싫어했나?"

"당연하지. 비비오를 데려가는 것만으로도 용서 못하는 데 그게 사실 날 좋아해서 시작한 거였고, 그런 정신 나간 내기까지 들어버리면, 없는 정도 떨어지지 않겠어? 비비오가 이긴 내기여서 허락한 거야. 내 인내심 바닥나기 전에 청혼한 걸 다행으로 여겨."

아까만 해도 살기를 뿌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기럼...지금은?"

"그냥 내딸 도둑놈일 뿐이지."

"푸훗! 푸하핫! 그기 뭐꼬!"

반평생 괜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걸 알아, 어쩐지 허무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페이트가 날 원망하지 않아서, 껄그러웠던건 나뿐이어서 다행이다.

"고맙데이. 페이트."

마지막이 다가와서야 더 털고 갈 수 있어서.

"정말로...고맙데이...페이트."

이제서야, 비비오와 마주 할 수 있게 되었어.





[Eternally 외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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